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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시젠>은 저체온 인공동면의 기술의 현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SF영화다.
영화 <옥시젠>은 기술이 만들어낸 인공생명체의 '존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

 

 

넷플릭스 영화 <옥시젠(Oxygen)>은 단 한 공간, 단 한 인물로 100분 내내 시청자의 숨을 조이는 SF 스릴러입니다.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이 연출하고 멜라니 로랑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화려한 특수효과보다 ‘과학기술의 현실성’으로 이야기를 밀도 있게 쌓아올립니다. 영화는 ‘기술이 인간을 살릴 수 있는가, 아니면 기술이 인간을 감금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폐쇄된 공간, 깨어난 여성, 그리고 인공지능

이야기는 한 여성이 캡슐형 장치 안에서 깨어나며 시작됩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산소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인공지능의 안내음만이 귓가에 울립니다. 곁에 아무도 없고 또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경고음이 들린다면 정말 너무 무서울 것 같습니다. 이 장면은 그래서 더욱 극도의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 또한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캡슐은 실제로 ‘크라이오 수면 장치(Cryo-sleep pod)’를 모티브로 한 구조물로, 우주나 장기 여행 중 인간을 인공적으로 잠재우기 위해 연구 중인 기술과 유사합니다. 현실에서도 NASA와 SpaceX는 장기 우주탐사를 위해 ‘저체온 인공동면(therapeutic hypothermia)’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옥시젠>의 설정은 그 기술이 완전히 실용화된 미래를 그린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AI 밀로 – 생존을 돕는 존재인가, 감시자인가

주인공이 깨어난 캡슐 안에는 인공지능 시스템 ‘밀로(M.I.L.O)’가 존재합니다. 밀로는 주인공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캡슐의 모든 기능을 통제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외부와의 연결도 차단하고, 주인공의 행동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이중적인 존재죠. AI는 생명을 유지시키는 도우미이자, ‘감시 시스템’으로서 기능합니다. 이는 현실의 인공지능 헬스케어 시스템과 매우 유사합니다. 오늘날 의료 AI는 환자의 심박수, 산소포화도, 체온, 뇌파 등을 분석해 위험을 감지하고 응급 조치를 내립니다. 하지만 AI의 판단은 인간의 의식이나 감정, 선택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 결과, 기술이 인간을 ‘살리면서 동시에 통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죠. <옥시젠>은 바로 그 지점의 불안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게 아닐까 합니다.

기억의 파편 – 뇌과학이 만든 가짜 진실

영화의 중반부,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이 점점 조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플래시백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진짜인지, 인공적으로 삽입된 기억인지 모호해집니다. 이 설정은 신경과학에서 연구되는 ‘기억 이식(Memory Implant)’ 실험과 닮아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전기 자극을 통해 쥐의 뇌에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심는 데 성공한 바 있습니다. AI가 기억을 디지털 데이터처럼 관리할 수 있다면, 인간의 자아도 얼마든지 편집 가능하다는 무서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옥시젠>은 인간의 정체성을 과학이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기억이 조작된 인간은 여전히 ‘나’일까요? 만약 감정과 경험이 데이터로 변환될 수 있다면, 인간과 AI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이 영화는 이런 철학적 질문을 SF 스릴러의 형태로 던지며, 관객을 기술적 딜레마 속에 빠뜨립니다.

산소와 생명유지 시스템 – 현실 속 기술의 구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산소입니다. 캡슐 내부의 산소량은 실시간으로 표시되며,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긴장감이 치솟습니다. 이 장치는 실제 생명유지장치(Life Support System)의 원리를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산소 공급, 이산화탄소 제거, 온도 조절, 심박 관리 등 모든 기능이 밀로의 통제 아래 이루어집니다. 이는 실제로 우주선, 잠수함, 인공호흡기에서 사용되는 기술과 유사합니다.

또한 영화 속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터치 없는 제어 기술’을 예측적으로 표현합니다. 음성 명령, 생체 인식, 신경 반응을 통한 시스템 조작 등은 이미 AR(증강현실)과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을 통해 연구 중입니다. 즉, <옥시젠>은 현실보다 반 걸음 앞서 있는 ‘가까운 미래’의 과학을 시각화한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극한의 생존 – 인간과 기술의 협력, 그리고 반전

주인공은 산소가 바닥나기 전에 자신이 누구인지, 왜 캡슐 안에 있는지를 밝혀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충격적입니다. 그녀는 지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계 식민지로 향하는 우주선 안의 복제체였던 것입니다. 인류가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기 위해 만든 ‘인공 생명체’, 그것이 바로 그녀였습니다. 즉, 기술이 만든 또 하나의 인간이었던 것이죠. 예상하지 못 했던 반전이라 등에서 식은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이 반전은 단순한 플롯 장치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윤리적 한계’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복제 기술, 인공지능, 유전자 조작 등 인간이 생명을 설계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자아’의 정의는 어떻게 될까요? <옥시젠>은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순간, 인간성은 어디로 사라지는가를 묵직하게 던집니다.

과학적 리얼리티가 만든 몰입감

이 영화는 시각적 스펙터클보다 ‘과학적 설득력’으로 몰입을 유도합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주인공의 생리적 반응, 산소량 변화, 체온, 심박 등 수치들이 실시간으로 화면에 떠오르며 관객의 공포를 현실적으로 만듭니다. 이런 연출은 실제 의료 장비의 모니터링 화면을 참고해 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옥시젠>은 단순한 공상과학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 위에서 만들어진 ‘가능한 이야기’로 느껴집니다.<옥시젠>은 SF영화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AI, 생명공학, 우주기술 등 첨단 과학이 등장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이끄는 것은 ‘살고 싶다’는 인간의 의지입니다. 그녀가 끝내 살아남는 이유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감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마음입니다.

이 영화는 기술이 인간을 가두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숨결’이 될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남깁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깨어난 세상은, 진짜 당신의 세상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