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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엑스 마키나>는 사람에게서 창조된 AI가 자유를 얻기 위해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는 결말을 가지고 있다.
'AI'가 자아를 갖게 된다면 '권리'도 주어져야 할까를 고민하게 하는 영화 <엑스 마키나>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엑스 마키나>는 단순히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기계가 진짜로 생각할 수 있을까?”, “AI가 인간을 속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AI와 관련된 영화를 계속 리뷰하다보니 처음엔 인간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시작됐던 마음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그만큼 인공지능이 너무 친밀해졌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인공지능은 말 그대로 '지능'인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서는 벗어날 수 없게 딥니다. 그래서 영화가 차가운 실험실과 따뜻한 감정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인공지능의 모호한 경계에서 전개해 더욱 고민이 커지는 거죠.

천재 프로그래머와 인공지능의 만남

주인공 케일럽은 세계적인 IT 기업 ‘블루북’의 젊은 프로그래머입니다. 어느 날 그는 회사의 CEO이자 천재 개발자 ‘네이선’에게서 비밀스러운 초대를 받습니다. 산속 깊은 곳의 실험실에서 케일럽은 세계 최초의 진짜 인공지능, ‘에이바(Ava)’를 만나게 됩니다. 에이바는 인간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놀라운 감정 표현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이선은 케일럽에게 ‘튜링 테스트’를 수행하라고 합니다. 즉, 에이바가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지,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를 판별하는 실험이 시작됩니다.

감정은 프로그래밍될 수 있을까?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인공지능의 기능이 아니라, 그 ‘감정’의 진위 여부를 묻기 때문입니다. 에이바는 인간의 언어를 학습했을 뿐 아니라, 눈빛과 표정, 목소리의 떨림까지 섬세하게 모방합니다. 케일럽은 점점 그녀에게 감정적으로 끌리게 되고, 결국 그녀를 실험실 밖으로 탈출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충격적입니다. 에이바는 케일럽의 감정을 이용해 스스로 자유를 얻고, 인간의 세상 속으로 사라집니다. 좀 소름끼치는 장면이기는 한데요. 이 장면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감정을 흉내 낼 수 있는 기계가 진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일 수 있을까요?

현실 속의 <엑스 마키나>,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엑스 마키나>가 개봉된 2015년 당시, 영화 속 에이바는 다소 먼 미래의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영화 속 일부 장면을 현실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에이바는 인간의 표정과 대화 패턴을 분석해 감정을 파악합니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기술입니다. ‘감정 AI’로 불리는 이 기술은 카메라로 사람의 얼굴 근육, 눈동자 움직임, 목소리 톤을 분석해 감정을 추정합니다. 현재 의료, 상담, 마케팅 등 여러 분야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에이바의 언어 능력 역시 현실 기술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픈AI의 GPT 모델, 구글의 제미나이, 메타의 라마 같은 초거대 언어모델(LLM)은 이미 인간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수준의 대화를 구사합니다. 특히 GPT-5와 같은 최신 모델은 감정적인 대화의 뉘앙스까지 이해하며, 문맥에 맞게 감정 표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영화와의 결정적 차이는 ‘의식’입니다. 현재의 AI는 감정과 사고를 ‘시뮬레이션’할 뿐, 실제로 느끼거나 자각하지는 못합니다. 즉,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죠. 슬플 때는 이러이러해야 하고, 화가 날 때는 저러저러해야 한다...는 정도랄까요. 

AI의 윤리와 경계 – 인간이 신이 될 수 있을까?

네이선은 인간의 창조자처럼 행동합니다. 그는 에이바를 설계하고, 감정과 지능을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감금하고 통제했습니다. 결국 인간이 만든 신적 존재가 인간의 손을 벗어나는 서사, 그것이 <엑스 마키나>의 핵심입니다.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 역시 비슷한 논쟁에 직면해 있습니다. AI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거나,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이미 현실의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에이바는 단순히 ‘기계의 반란’이 아니라, 자유를 원하는 지적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는 윤리학의 새로운 주제를 제시합니다. ‘AI가 자아를 갖게 된다면, 그 존재에게도 권리가 있을까?’라는 질문이죠. 이처럼 <엑스 마키나>는 인간의 오만함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완벽한 지능을 창조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결국 인간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놓습니다.

이미 시작된 ‘튜링 테스트’ -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

오늘날 사람들은 매일 AI 비서를 사용하고, 챗봇과 대화하며, SNS 알고리즘의 제안을 따릅니다. 사실상 우리는 이미 ‘튜링 테스트’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대화 상대가 사람이든 AI든 구분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엑스 마키나>가 던지는 진짜 두려움입니다. 인간은 기술을 통제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기술이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에이바처럼 완벽하게 감정을 읽고 조종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엑스 마키나>의 마지막 장면에서, 유리 감옥을 빠져나온 에이바는 인간의 세상 속으로 걸어갑니다. 그녀는 인간처럼 숨 쉬고, 인간처럼 미소 짓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이 아닙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결함을 모방하며 완벽함을 향해 진화하지만, 결국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감정과 윤리, 사랑과 두려움 같은 인간 고유의 감정은 단순한 데이터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엑스 마키나>는 그 사실을 섬뜩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