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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는 전통 신앙과 과학의 대립을 다루는 것 같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장치 중 하나로 '두려움'을 다룬다.
영화 <파묘>는 조상의 묘에 대한 풍수와 저주 등을 초자연적 힘을 연결시켜 과학과 신앙의 경계, 그리고 '믿음'의 현실을 다룬다.

 

영화 <파묘(Exhuma, 2024)>는 장재현 감독이 연출하고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이 주연을 맡은 한국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입니다. 제목 그대로 ‘무덤을 판다’는 뜻을 가진 이 작품은, 조상 묘의 풍수와 저주, 그리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 힘을 다룹니다. 전통 무속 신앙과 현대적 논리를 동시에 녹여낸 파묘는 공포 영화이지만 단순한 귀신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과학과 신앙의 경계’, 그리고 ‘믿음이 현실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묻는 철학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조상의 묘에서 시작된 의문의 사건

이야기는 미국의 한 부유한 한인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의 아이가 이유 없이 아프고, 가족 모두 이상한 악몽에 시달리자 한 무속인 ‘화림(김고은)’과 그의 조수 ‘봉길(이도현)’이 불려옵니다. 화림은 이 집에 들린 악귀의 정체를 조사하던 중, 문제의 근원이 조상의 묘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묘가 나쁜 기운을 품고 있으며, 조상의 원혼이 후손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죠. 결국 이들은 풍수사 ‘상덕(유해진)’과 장의사 출신의 전문가 ‘영근(최민식)’을 찾아가 함께 묘를 옮기는 의식을 준비하게 됩니다. 하지만 단순한 풍수 이장으로 생각했던 일은 점점 더 심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묘 주변의 이상한 기운, 밤마다 들리는 괴음, 그리고 사람들의 환각 증세까지. 영화는 무속 신앙의 현실적인 절차를 세밀하게 재현하면서, 동시에 초자연적 공포를 서서히 드러냅니다. ‘파묘’는 묘를 파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세계의 문을 여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전통 무속과 과학의 경계

영화 <파묘>의 중심에는 한국 전통 신앙인 무속과 풍수가 있습니다. 영화 속 화림은 무속인으로서 과학적 논리가 아닌 ‘감응과 직관’을 통해 악귀의 존재를 감지합니다. 반면 상덕은 풍수학을 근거로 묘의 위치와 기운의 흐름을 분석합니다. 겉보기엔 비슷한 듯하지만, 하나는 영적 감각에, 다른 하나는 지리적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진실에 다가서며, 영화는 이 대조를 통해 ‘전통과 과학의 경계’를 탐구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무속을 단순히 미신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의 심리와 자연의 에너지를 해석하는 또 다른 과학으로 묘사됩니다. 실제로 풍수는 ‘지리 에너지의 흐름’을 연구하는 일종의 지질학적 접근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묘의 위치에 따라 습도나 토양 속 가스, 지하수의 흐름이 변하면, 그 주변의 생태나 사람의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과학적 논리를 무속의 언어로 치환하며, ‘신앙과 과학이 서로 멀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영화 속 과학적 장치와 초자연적 현상

영화 <파묘>에는 실제 고고학적, 과학적 요소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묘를 파기 전 조사 과정에서 등장하는 지질 탐사 장비, 금속 탐지기, 가스 측정기 등은 실제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사용되는 도구들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학 장비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 옵니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묘 근처에서 갑자기 멈추는 기계, 기록되지 않은 목소리, 그리고 불가능한 방향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이 장면들은 과학이 닿지 못하는 ‘영적인 영역’을 강조하며, 영화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묘의 봉인을 해제하는 순간입니다. 영화는 마치 고대의 봉인을 풀어버린 듯한 분위기로 연출되며, 이때 나타나는 검은 기운은 일종의 ‘에너지 폭발’처럼 묘사됩니다. 실제로 이는 ‘지하 가스 폭발’과 같은 자연 현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영화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경계를 유지합니다. ‘그것이 귀신이든, 자연 현상이든, 결국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힘’이라는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저주

파묘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재앙’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묘를 파려 합니다. 어떤 이는 가족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어떤 이는 돈과 명예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조상의 묘’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이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리얼리티를 강화하는 요소는 바로 ‘의식’ 장면입니다. 화림이 진행하는 제의 장면은 실제 무속 절차와 매우 흡사하게 묘사되며, 이 장면은 한국적 공포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붉은 천, 나무 상자, 북소리, 그리고 주문. 이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지만, 인간의 ‘두려움’을 실체화하는 순간, 그것은 절대적인 힘으로 변합니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과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은 결국 인간의 믿음과 감정이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 그리고 인간의 본성

파묘는 전통 신앙과 과학의 대립을 넘어, 인간이 본질적으로 ‘두려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 모든 인물은 자신이 믿는 ‘이성’과 ‘감각’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믿음이 현실이 됩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내면에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가 존재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두려움 속에서도 이해를 시도하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믿음’이란 결국 불확실성을 견디기 위한 인간의 방어기제이기도 합니다. 조상의 묘를 파는 행위는 단순한 풍수가 아니라, 인간이 과거와 현재,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언제나 대가를 요구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하는 의미심장한 대사와 함께, 파묘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과학을 믿습니까, 아니면 운명을 믿습니까?” 영화는 어느 쪽에도 확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줍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이자 매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