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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서클>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기술이 동시에 통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영화 <더 서클>은 감시 기술과 데이터 통합 시스템이 하나가 됐을 때 겉보기에 정의롭고 깨끗해 보이는 것들이 인간의 사생활을 침범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2017년 개봉한 영화 <더 서클(The Circle)>은 제임스 폰솔트 감독이 연출하고, 엠마 왓슨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작품입니다. 단순한 SF영화로 보이지만, 이 영화는 현실에 이미 뿌리내린 감시 기술데이터 통제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동시에 어떻게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모든 것을 비추는 눈, ‘SeeChange’의 시대

영화 속 가장 주목받는 기술은 초소형 카메라 시스템 ‘SeeChange’입니다. 손톱만 한 크기의 카메라를 세계 곳곳에 설치해 24시간 실시간 영상 송출이 가능하게 하는 기술로, 표면적으로는 범죄 예방과 투명한 사회를 위한 장치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곧 이 기술은 사회를 감시의 그물망으로 만드는 도구로 변합니다.

이러한 기술은 현실에서도 이미 존재합니다. 인공지능 기반 CCTV 감시 시스템, 얼굴 인식 알고리즘, 그리고 실시간 스트리밍 플랫폼의 발전은 인간의 일상을 ‘공개 가능한 데이터’로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영화 속 ‘투명 사회’는 겉보기에 정의롭고 깨끗하지만, 그 속에는 프라이버시의 붕괴라는 커다란 대가가 숨어 있습니다. “숨길 것이 없다면 두려울 것도 없다”는 말은 기술의 명분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사생활을 침범할 때 우리는 정말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요?

2. 모든 정보를 통합하는 시스템, ‘TrueYou’

영화 속 두 번째 핵심 기술은 트루유(TrueYou)입니다. 이는 개인의 모든 계정—SNS, 은행, 건강 기록, 공공 데이터까지—를 하나로 통합하는 시스템으로,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의 디지털 신분을 갖게 하는 개념입니다. 이 정도만 들어도 전체주의의 냄새가 물씬 나죠. 개인의 자유가 '허가'된 자유라면 그건 자유라고 할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영화 속 <더 서클>은 이 기술을 통해 인간의 삶을 ‘투명하게’ 만들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모든 정보가 한 곳에 모이는 순간, 개인은 데이터화된 존재로 전락합니다. 현실에서도 이 개념은 이미 적용되고 있습니다. 구글의 통합 로그인, 애플의 헬스케어 플랫폼, 메타의 데이터 생태계가 모두 ‘하나의 계정으로 모든 것을 관리’한다는 목표 아래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언제든지 누군가가 우리의 데이터를 통제할 수 있다는 위험이 공존합니다. 이런 내용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왜냐하면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개입되는 순간, 편리함은 곧 통제로 변하거든요. ‘트루유’는 완벽한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데이터 독점정보 불평등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결국 누가 데이터를 갖고 있느냐가 현대 권력의 핵심이 되어버린 것이죠.

3. 인간의 자유를 위협하는 ‘자발적 감시 사회’

<더 서클>이 다른 SF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초현실적인 상상 대신 현실 가능한 기술을 기반으로 인간의 행동 변화를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 속 사람들은 강제로 감시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공유하며 ‘투명한 인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의 SNS 문화와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노출하며, ‘좋아요’와 ‘조회수’라는 보상을 받기 위해 스스로 감시 체계 안으로 들어갑니다. 감시라는 걸 모르면서 말이죠. 자신의 표현이라는 그럴듯한 포장 속에서 누군가는 나를 투명하게 바라보고 있고 그로 인해 종종 범죄도 일어나고 있거든요.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메이가 처음엔 이 시스템의 상징이 되었다가, 결국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유의 부재를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투명함은 신뢰를 가져올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간은 불완전함과 비밀 속에서 더 인간답게 살아갑니다. 모든 것을 공유하는 세상은 겉으로는 평등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더 치열한 감시와 비교, 경쟁이 존재합니다.

4. 영화 속 과학기술, 현실에서도 가능한가?

영화 속 ‘SeeChange’나 ‘TrueYou’는 단순한 상상이 아닙니다. 이미 현실에서 그와 유사한 기술이 상용화되고 있습니다. IoT(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데이터 통합, 인공지능 기반 분석 시스템은 영화보다 더 정교한 감시를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시티, 자율주행 차량, 개인 AI 어시스턴트 등은 데이터를 통해 우리의 생활을 개선하지만, 동시에 감시의 범위를 확장시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선택권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인간을 ‘도와주는 도구’에서 ‘결정을 내려주는 존재’로 진화할 때, 우리는 스스로의 판단 능력을 상실할 위험에 놓입니다. 영화 <더 서클>은 바로 이 지점을 경고합니다.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결국, 선택은 인간에게 달려 있다

 

<더 서클>은 마지막까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투명함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자유를 선택하겠습니까?” 기술은 도덕적이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의도에 있습니다. 영화 속 세계는 ‘보여지는 존재’가 되는 순간 얼마나 쉽게 통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메이의 선택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읽힙니다. 투명한 세상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숨 쉴 틈이 없는 세상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 <더 서클>은 단순한 경고를 넘어, 오늘날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우리는 진짜 자유를 잃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는 이미 ‘서클’ 안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