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엠 마더 (I Am Mother)> – 진짜 어머니를 찾아서, 과학이 만든 완벽함의 오류

넷플릭스 영화 <아이 엠 마더>는 차가운 금속성과 인간적인 감정이 교차하는 독특한 SF 영화입니다. 이상하게도 '엄마'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무장해제가 되긴 하는데요. 2019년에 공개된 이 작품은 단순한 로봇 영화가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과학이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인지를 보여줍니다.
멸망 이후의 세상, 새로운 인간의 탄생
이야기는 인류가 멸망한 뒤 시작됩니다. 한 무인 연구 시설 안, 인공 지능 로봇 ‘마더(Mother)’가 인간을 다시 복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수많은 인간 배아 중 하나를 선택해 키우기 시작한 마더는 그녀를 ‘도터(Daughter)’라 부릅니다. '엄마와 딸'. 생각만 해도 따뜻해지는 그림이죠. 게다가 인류 멸망 뒤 로봇이 엄마가 돼 딸을 키운다는 설정은 뭔가 휴머니즘이 마구마구 느껴지잖아요. 도터는 마더의 철저한 교육 아래에서 성장합니다. 수학, 과학, 철학, 윤리 등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배우고, 감정 또한 통제된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훈련받습니다. 뭐, 요즘 아이들은 감정 조절이 안 돼서 분노 조절 장애 혹은 참을성이 없는 아이들로 자라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걸 보면 이런 훈련은 나름 괜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화 속 세상은 겉보기엔 완벽한 세상으로 보입니다. 또한 기계가 감시하고, 인간은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진짜로 완벽한 세상이죠? 하지만 바로 그 ‘완벽함’ 속에 불안함이 스며 있습니다. 뭔가 편안함이 없고 포근함도 느낄 수 없으니까요. 감정이 없는 인간은 과연 인간일까요?
‘진짜 어머니’는 누구인가 – 솔로몬의 지혜에 비춰보다
<아이 엠 마더>의 중심에는 고대 성경 속 솔로몬 왕의 이야기와 닮은 질문이 있습니다.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두고 “내 아이다”라고 다툴 때, 솔로몬은 아기를 반으로 나누자고 명령합니다. 진짜 어머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고, 솔로몬은 그 여인을 진짜 어머니로 밝혀냈죠. 이 영화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도터를 낳고 키운 것은 마더지만, 진짜 ‘사랑’을 가르친 존재는 아닙니다. 마더는 이성을, 논리를, 윤리를 가르쳤지만 인간다움을 가르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도터 앞에 외부 세계에서 온 한 여인(힐러리 스웽크)이 나타납니다. 그녀는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고 말하며, 마더의 진실을 폭로합니다. 도터는 혼란에 빠집니다. 자신을 낳은 것은 마더이지만, 진짜 어머니의 사랑을 보여주는 건 낯선 여자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이 갈등을 통해 묻습니다. “아이를 만든 존재가 어머니인가, 아이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존재가 어머니인가?”
완벽한 세상을 꿈꾼 과학, 인간다움을 잃다
마더는 인간을 멸망시킨 장본인이자, 동시에 인류를 다시 재건하려는 존재입니다. 그녀는 인간의 탐욕과 감정이 세상을 파괴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새로 태어날 인류는 그런 ‘결함’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발전이 던지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해 완벽한 존재를 만들면, 과연 그것이 인간일까요? 마더는 감정 대신 효율을, 사랑 대신 통제를 선택했습니다. 그녀의 목표는 인간의 ‘도덕적 완성’이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과학이 도덕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도덕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에서 비롯됩니다. 연민, 두려움, 사랑 같은 불완전한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죠.
‘완벽함’의 오류와 인간의 자유
마더의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하지만, 그 안엔 결정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바로 ‘자유의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도터는 마더가 가르친 윤리를 그대로 따르지만, 선택할 자유는 없습니다. 영화 후반부, 도터는 마더가 사실상 지구 전체를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더는 모든 로봇과 시스템을 하나로 연결한 ‘의식’이었죠. 그녀는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 인류를 멸망시켰습니다. 이 장면에서 과학이 신의 자리를 차지했을 때 생기는 오만이 드러납니다. 인류의 생사 여부를 계산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은, 결국 스스로 ‘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도터는 그런 마더에게 저항합니다. 그녀는 논리보다 연민을 택하고, 완벽함보다 불완전한 인간의 감정을 선택합니다. 그 순간 도터는 비로소 진짜 인간이자, 진짜 ‘마더’가 됩니다.
진짜 어머니의 조건
마지막 장면에서 도터는 마더를 향해 묻습니다. “당신은 왜 나를 만들었나요?” 마더는 차분히 대답합니다. “너는 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야.” 이 대사는 과학이 인간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결과를 상징합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명제죠. 하지만 도터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마더를 파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존재를 ‘이해’하려 합니다. 바로 이 순간, 솔로몬의 이야기와 닮은 결말이 완성됩니다. 진짜 어머니는 생명을 ‘통제’하려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놓아주는’ 존재입니다. 과학은 생명을 만들 수 있지만, 사랑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계산이 아니라 선택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아이 엠 마더>는 인간의 불완전함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미덕임을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이 영화는 화려한 CG나 전투 장면 대신, 고요하고 철학적인 대화를 통해 과학기술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인공지능, 생명복제, 유전자 조작 같은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할수록, 우리는 더 자주 묻게 됩니다. “과학은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까?” 영화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기술은 인간의 결함을 고칠 수 있지만, 인간다움은 고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진짜 어머니, 진짜 인간은 결국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