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원스(Once)>, 가을에 음악으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방법

음악 영화라고 해도 배우가 직접 작사와 작곡으로 참여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죠. 하지만 영화 <원스(Once, 2007)>는 화려한 장치도, 거대한 스케일도 없이 오직 ‘음악과 마음’만으로 관객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유는 배우들의 음악 작업 참여에 있죠.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감정흐름까지 담겨 있는 진심이 묻어있는 작품입니다. 감독 존 카니는 이 영화를 통해 “진심이 담긴 노래는 언어보다 강하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합니다. 배우이자 실제 뮤지션인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연기한 두 주인공은 서로의 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하며, 그 안에서 묘한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리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남습니다.
거리의 음악가와 이민자 여성의 만남
이야기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거리에서 시작됩니다. '버스킹' 벌써 막 낭만의 거리가 보이지 않나요. ‘그 남자(글렌 한사드)’는 낮에는 아버지의 청소기 수리점을 돕고, 밤에는 길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입니다. 그는 세상에 대한 불만보다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미련을 노래로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지만 그는 늘 노래에 진심이죠. 그러던 어느 날, 체코에서 이민 온 ‘그 여자(마르게타 이글로바)’가 그의 노래를 듣고 다가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녀는 진심이 담긴 그의 노래를 '딱' 느끼고 맙니다. 그래서 남자의 노래에 감동을 받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죠.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설지만 음악 영화가 그렇듯이 둘은 음악을 통해 감정을 공유합니다. 남자는 자신의 미완성곡을 여자에게 들려주고 여자는 섬세하게 피아노로 화음을 맞추죠. 음악적으로 서서히 하나가 돼 가는 둘은 음악으로 아름다운 대화를 해나갑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연주하는 ‘Falling Slowly’를 들으면 그들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음악이 만들어주는 진심의 순간들
<원스>는 대사가 아닌 이야기로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곡을 만들고, 작은 녹음 스튜디오에서 밴드와 함께 연주하며 음악으로 하나가 됩니다. 영화 속 음악들은 실제로 배우들이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감정의 흐름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특히 ‘When Your Mind’s Made Up’과 ‘If You Want Me’ 같은 곡들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설렘과 망설임을 절묘하게 표현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인물 간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고, 그들의 음악으로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호감, 망설임, 그리고 작별의 징후까지 모든 것이 멜로디 속에 녹아 있습니다. 이거야 말로 진짜 음악영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이 이렇게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음악으로 모든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낭만이 바로 이 가을에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죠.
그들의 관계는 로맨스와 우정 사이에서 미묘하게 흔들립니다. 남자는 이전 연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자는 가족에 대한 책임 때문에 쉽게 다가설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랑의 끈이 더 질긴 법이죠.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영혼의 동반자가 돼 버린 이들은 각자의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영화는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가’가 아니라, ‘그 시간에 얼마나 진심이 있었는가’라는 '마음'의 깊이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랑하는데 시간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사람의 떨림과 숨소리가 살아있는 음악 영화
영화는 더블린의 거리를 생생하게 담아냅니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 오래된 건물, 그리고 낡은 기타. 이 모든 것은 화려하진 않지만 진짜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아, 정말 걸어보고 싶은 거리예요. 감독 존 카니는 실제로 버스킹(거리 공연)을 하던 뮤지션 출신이었기 때문에,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감정과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과학기술을 다룬 영화를 리뷰했으니 억지로라도 이 영화의 과학기술적인 측면을 꼽자면, 음악 제작 과정에서 사용된 ‘포터블 녹음 장비’나 ‘아날로그 사운드 믹싱’을 찾아낼 수 있겠죠. 대형 스튜디오가 아닌 소규모 장비를 이용해 음악을 녹음하고, 실제 거리의 소음과 악기의 생소리를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현실적인 질감을 살려냈습니다. '날 것' 그대로가 전하는 감동이 생생합니다. 이는 오늘날의 ‘로우파이 사운드(lo-fi sound)’의 시작점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기술의 발전이 아닌 ‘사람의 감정’이 음악을 완성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컴퓨터가 아무리 정교한 음을 만들어도 사람의 떨림과 숨소리가 없는 음악은 생명을 가지기 어렵거든요. <원스>는 이 단순한 진리를 가장 순수한 방식으로 증명합니다.
공연이 끝난 후 잔향처럼 남는 음악들
영화 후반부에서 남자는 런던으로 떠나기 위해 새로운 꿈을 꾸고, 여자는 가족과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남습니다. 너무나 아쉬운 장면이죠. '영희'와 '철수'는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을 원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끝나지 않아요. 둘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끝내 고백하지 않고 결국 음악으로 모든 감정을 나누고 떠납니다. 그 이별은 아프지만, 아름답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한 피아노 위에 놓인 악보는 두 사람의 추억이자, 그들이 함께 만든 시간의 증거입니다. 음악이 끝나고 화면이 어둡게 전환되는 순간 관객은 묘한 공허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마치 짧은 공연이 끝난 후의 잔향처럼 오래 남는 감정입니다. <원스>의 특별함은 바로 이 여운에 있습니다. 화려한 대사나 강렬한 사건이 없어도 오랜 시간 마음속에서 그들의 노래가 계속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 꼭 함께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잠시 스쳐간 인연이 삶을 영원히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원스>는 두 사람이 만나고, 음악을 만들고 그리고 각자의 길로 가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라, 서로에게 남겨진 울림의 시작입니다. 오드리 헵번의 로맨스처럼 고전적이지도 현대 영화처럼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그만의 진정성과 따뜻함이 있습니다. 오늘은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