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서던 리치: 소멸의 땅(Annihilation)>, 소멸되는 자연의 법칙과 DNA 굴절이 만드는 '복제체'

과학이 자연의 질서를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미 지구의 자연은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기후환경위기'를 가져왔죠. 그래서 더욱 이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Annihilation, 2018)>에 관심이 갑니다. 알렉스 가랜드 감독이 연출하고 나탈리 포트먼이 주연을 맡은 SF 스릴러 작품인 이 영화는 제프 밴더미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습니다. 내용은 단순한 외계 침입이나 생존 스토리를 넘어 생명과 진화,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합니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인간의 계획 하에 된 결과가 아니지만 만약 ‘과학이 자연의 질서를 바꾼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라는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특히 영화 속 ‘셰이머(Shimmer)’라 불리는 현상은 현실의 유전자 변형, 빛의 굴절, 생태계 교란 같은 실제 과학 개념을 응용해 만들어졌습니다. 영화는 아름답고 동시에 불길한 자연의 진화 과정을 통해 인간이 과학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셰이머’로 뒤덮인 지역,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간 다섯 명의 여성
영화는 한 군인이 실종된 후, 그가 갑자기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는 심각한 기억 손상과 신체 이상을 보이며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립니다. 아내이자 생물학 교수인 ‘리나(나탈리 포트먼)’는 남편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그가 다녀온 ‘X 지역’의 실체를 조사하게 됩니다. 이 지역은 외계 물체가 떨어진 후 이상한 빛의 장막, 즉 ‘셰이머(Shimmer)’로 둘러싸이게 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리나는 생물학자, 물리학자, 심리학자, 지질학자 등으로 구성된 탐사팀과 함께 ‘셰이머’‘셰이머’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자연의 법칙이 완전히 왜곡된 생명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악어의 몸에 상어의 이빨이 자라나 있고,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곰이 등장하며, 식물의 가지에서는 인간의 형태가 피어납니다. 이건 마치 어린아이들이 재미로 그리는 그림에서나 볼 듯한 모습이죠. 이 모든 것은 ‘DNA의 재조합’이라는 생물학적 현상으로 설명됩니다. ‘셰이머’ 내부에서는 빛, 소리, 그리고 유전 정보까지 굴절되며 서로 뒤섞이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DNA 복제 과정에서의 오류가 자연 전체로 확산된 형태처럼 보입니다.
영화 속 과학 기술: DNA 굴절과 생명 복제의 세계
‘셰이머’의 핵심은 ‘유전자의 굴절(refraction)’입니다. 일반적으로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며 굴절되듯, 이 영역에서는 생명체의 DNA가 서로 굴절되어 혼합됩니다. 이로 인해 식물의 세포가 인간의 세포와 섞이고, 동물의 유전자가 다른 종의 특성을 띠게 됩니다. 생명체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영화는 이 현상을 생물학적 진화와 유전공학의 한계에 대한 은유로 사용합니다. 실제로 현대 과학에서도 ‘CRISPR-Cas9’ 같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해 특정 생물의 DNA를 조작하거나, 서로 다른 종의 유전자를 결합하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 셰이머처럼 ‘자연 전체의 유전자 구조가 무작위로 뒤섞이는 현상’은 현재의 과학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 자체는 유전자 교차 실험의 극단적인 확장판으로서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상상을 제시합니다. 혹시라도 어두운 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또한 영화 속 ‘셰이머’는 단순한 생물학적 변이가 아니라, ‘자기 복제(Self-Replication)’의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셰이머는 자신이 닿는 모든 것을 흡수하고 변형시키며,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이는 일종의 ‘자연적 인공지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아닌, 스스로 학습하고 재구성하는 생태적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리나의 복제체’는 이러한 원리를 극적으로 시각화한 장면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는 복제체와 마주하며, 결국 자신이 ‘진짜 리나’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장면은 생명 복제 기술이 가져올 정체성의 위기를 상징합니다.
현실에서 가능한 과학인가?
영화에 등장하는 ‘DNA 굴절’과 ‘생명 복제’는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는 직접적인 구현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과학 연구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은 인공적으로 DNA를 설계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연구 분야입니다. 또, ‘유전자 재조합(Gene Splicing)’ 기술은 특정 유전자를 다른 종에 삽입해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내는 방법입니다. 이런 기술들은 생명 공학과 의학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만약 영화처럼 DNA의 모든 정보가 무작위로 섞이게 된다면, 예측 불가능한 결과가 발생할 것입니다. 정말 두려운 일이죠. 생명체의 구조적 안정성이 무너지고, 생태계 전체가 변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실제 과학자들은 ‘유전자 편집 기술의 제한선’을 매우 신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에서의 ‘셰이머’는 일종의 외계 생명체적 존재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재구성하고, 생명체의 정보를 복제하며, 스스로 확장합니다. 솔직히 지금도 인간은 사람의 유전자 조직의 아주, 아주, 아주 작은 부분밖에 모르거든요. 물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 개념과 유사한 이런 현상은 자연의 혼돈 속에서도 일정한 패턴과 질서가 형성되는 현상을 의미하죠. 셰이머는 혼돈과 질서가 공존하는 공간이며, 생명 그 자체의 진화 과정을 극단적으로 시각화한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에피소드와 심리적 의미
탐사팀이 셰이머 깊숙이 들어갈수록, 그들은 육체적 변이뿐 아니라 정신적 변화도 겪습니다. 자신을 잃어가고, 과거의 죄책감과 상처에 매몰되며,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과학적 현상과 심리적 불안이 겹쳐지면서, 셰이머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닌 ‘인간의 내면’을 상징하는 장소로 변합니다.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지 않은 일인데 이런 일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강제로 이뤄진다는 건 두려운 일이죠. 리나가 복제체와 마주하는 장면은 마치 자신의 내면과 싸우는 인간의 심리를 시각화한 듯합니다. 그녀는 결국 복제체를 파괴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의 눈동자에 셰이머의 빛이 비칩니다. 이는 그녀가 이미 복제되었거나, 셰이머의 일부가 되었다는 암시로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진짜 인간일까, 아니면 셰이머가 만들어낸 또 다른 존재일까?’ 의문을 갖게 됩니다.
과학의 경계, 인간의 경계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과학이 자연을 분석하고 조작하는 힘을 가졌지만, 그 결과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 셰이머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존재이며, 과학으로 해석할 수 없는 새로운 생명 질서의 상징입니다. 현대의 과학 기술, 특히 유전자 편집과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인간이 어디까지 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이 영화는 과학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동시에, 인간이 끝없이 진화하려는 본능을 반영합니다. 셰이머 안에서 일어난 변이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창조’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생명 질서로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아름답지만 두렵고, 신비롭지만 파괴적입니다. 과학은 분명 인류의 도구이지만,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오롯이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과학적 발전은 없었으면 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끝이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죠.